외감법 개정안 통과

 회계법인의 부실감사에 대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외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현행법 하에서는 어떤 경우든 회계법인이 부실감사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을 통하여 기관투자자 중 은행, 보험사, 상호저축은행 등이 부실감사를 사유로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한하여 원고에 해당하는 은행, 보험사, 상호저축은행 등이 회계법인의 부실감사를 입증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관투자자 중에서도 증권회사, 자산운용사 등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그리고 일반회사 또는 개인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피고에 해당하는 회계법인이 계속 입증책임을 지게 된다.

 이에 관하여 서울경제신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 서울경제 2008년 2월 27일 "부실감사 이어져 투자자피해 불보듯"

 내가 위 기사를 보면서 가장 "속상하고 억울"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은 “회계법인은 언제든지 피감사 기업에 대한 회계자료 제출요구권이나 재산상태 조사권 등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 데 반해 기관투자가는 오로지 감사보고서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감사인처럼 회계감사 권한이 없는 투자자에게 부실 입증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선 가장 먼저 소위 "회계자료 제출요구권이나 재산상태 조사권"이 어느 법률에 의해서 회계사 내지 회계법인의 권한으로 규정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만약 그러한 권한을 회계사 또는 회계법인에게 부여하는 실제로 법률이 존재한다면 제발, 제발 알려줬으면 좋겠다. 만약 그러한 법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만약 그러한 권한이 실제로 회계사에게 있다면, 회계사가 회계감사를 하면서 실제로 매일같이 하고 있는 아래와 같은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

 "안녕하세요, 모모모 과장님. 모모회계법인의 모모모 회계사입니다. 격무에 바쁘신 중에 이러한 요청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회계감사를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자료이므로 금년 매출액에 대한 거래증빙을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어 보여주시면 정말로,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 오늘은 시간이 안 되신다구요? 그러면 언제쯤...? 아, 이번 금요일에 조금 짬을 내보시도록 하시겠다구요? 아이구,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최대한 번거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관투자자는 오로지 감사보고서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또 무슨 이야기인가? 회계법인 등 감사인에게는 전혀 협조적이지 않으면서도 은행이나 보험사 등 대출, 투자기관 등이 요구하는 자료는 즉각 즉각 갖다 바치는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주로 은행을 위시한 금융기관 감사를 주로 해왔었는데, 감사를 하다보면 은행 등의 금융기관들이 차주나 피투자회사 등에 대하여 얼마나 풍부하고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깜짝 놀라곤 한다. 만약 실제로 그 차주 또는 피투자회사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하면서 그런 자료들에 접근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회계감사를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부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소위 '전문가' 집단 중 전문행위를 부실하게 행한 혐의를 받는 경우 그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는 집단은 눈 씻고 찾아봐도 회계사 집단 밖에 없다. 변호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의사들도 부실의료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도 그런 것이, 민법 및 상법 상 기본정신은 잘못을 주장하는 이가 그 입증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회계사 집단은 그 행위로 인한 효과가 공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피고로서 입증책임을 지도록 특별히 만든 것이며 이러한 책임은 물론 수긍이 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특별한 책임을 지우려면 특별한 권한도 부여하여야 한다. 실제로 권한은 없으면서 책임만 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위 기사 중 다음 부분을 보면서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또 허위ㆍ부실 회계로 투자 피해를 업어 손해배상 소송을 하더라도 입증책임이 원고(투자자)에게 있기 때문에 승소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 뻔하다. 따라서 사후에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회계법인의 부실회계에 대한 제재가 전무하거나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회계법인의 민사 책임 완화는 회계시장 전반의 신뢰하락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갑자기 부실감사에 대한 입증책임을 이야기하다가 부실회계에 관한 입증책임 및 제재에 관한 이야기로 슬쩍 넘어간다. 만약 기자가 조금이라도 회계환경 및 회계감사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아니 이 기사에서 그렇듯 자주 언급하는 "감사보고서"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찬찬히 읽어보았다면, 위와 같은 문구는 감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회계사와 회계법인은 "회계를 하는 자"가 아니다. 회계라는 것은 회사 또는 기타 실체의 재산상태 및 변동, 경제활동 등을 수치화하여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인데, 회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 또는 기타 실체 등 (실제로는 회사의 경영자 등)에 있다. 즉 회계사 내지 회계법인이 다른 회사의 회계를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회계사와 회계법인은 "회계감사"를 한다. "회계"와 "회계감사"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회계감사는 누군가가 자기 책임 하에 한 회계를 감사하는 것이다. 즉, 회계처리가 제대로 돼 있는지 보는 것이다. 회계사와 회계법인이 책임을 지는 부분은 바로 이 회계감사 부분이다. 감사보고서라는 것을 보면 명확히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재무제표를 작성할 책임은 회사 경영자에게 있으며 본 감사인의 책임은 동 재무제표에 대하여 감사를 실시하고 이를 근거로 이 재무제표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위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만약 누군가가 허위 또는 부실 회계로 인한 손해배상을 회계법인에 가서 찾는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회계법인의 부실회계에 대한 제재가 전무하거나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것도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책임질 분야도 아닌데 그에 대해 제재를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내가 쓰는 이 포스트가 회계사 집단의 일원으로서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어떤 회사의 경영자가 분식회계를 행하고 이를 도저히 상식적인 방법과 기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도록 꽁꽁 숨겨놓은 경우, 이를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회계법인에게 부실감사 혐의를 주고 그 입증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만약 회계사 내지 회계법인에게 의도적으로 숨긴 것을 추적하고 발견해낼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주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계사에게 계좌추적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위 기사에서 말하는 회계자료 제출요구권, 재산상태 조사권 등을 법적으로 보장해준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응당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손전등은 커녕, 양초 한자루도 주지 않으면서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쌓여있는 잡동사니 중 숨겨놓은 동전을 찾아내라고 요구하고, 만약 찾아내지 못할 경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찾았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요구할 바에는 차라리 점쟁이를 데려다 쓰라고 말하고 싶다.

 기사에는 외감법 개정안과 함께 통과된 증권거래법 개정안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기에 이에 대해서도 몇 자 적으려 했으나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그냥 좀 서럽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것이 내 현재 심정이다.

* 본 포스트에 인용된 기사의 저작권은 (주)서울경제신문 및 (주)인터넷한국일보에 있습니다.

by 홍기맨 | 2008/02/28 16:16 | About 'A'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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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Fly, High at 2008/02/29 23:49

제목 : 외감법 개정안 통과
외감법 개정안 통과산업은행이 하이닉스 반도체에 투자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산업은행은 투자 결정 전에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하이닉스 반도체의 감사보고서를 본다. 감사의견은 '적정' 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튼실한 재무구조를 갖췄다는 판단을 했고,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느날 하이닉스가 대규모 분식회계를 통해 당기순이익을 과대계상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이닉스는 다음날 주가가 곤두박질 쳤고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 산업은행은 회계......more

Commented by 홍가맨 at 2008/02/29 01:14
제가들은 얘기로는 베트남은 회계사에게 검찰권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즉 감사하다가 분식회계 혹은 Fraud가 발견되면 즉각 송환조사 및 기소까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믿거나 말거나... 근데 그런날이 우리나라에도 과연 올까요? -.-;
Commented by 더홍 at 2008/02/29 10:58
역시 이상과 현실은 다른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 실질적인 권한이 미약한 회계법인, 따라서 감사에 필요한 자료확보가 투자은행의 그것에 못미친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울 따름입니다. 기업이 외부감사에 충실하지 못할 것 이라면 뭐하로 비싼 돈 들여 감사받는 것인가요... '적정'의견 도장 받기용? 향후 기업의 부실이 드러나면 회계가 잘못이건(기업측),감사가 잘못이건(회계법인측) 그 피해는 결국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일까요? 외감법 개정안의 내용도 참 아이러니 합니다. 기업을 감사하는게 회계법인인데, 그 감사를 또 감사 하라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원고측에서 말이죠. 회계법인은 회계에 관한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고, 감사 일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놓은 조직인데 그들이 한 일을 감사 대상 기업이 또 입증하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2/29 13:53
홍가맨님// 아마도 그런 날은 저희 살아있는 동안에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시스템 하에서는 제일 만만한 게 회계사인데요, 뭐...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2/29 14:03
더홍님// 한가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서 말씀 드립니다만, 감사대상기업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는 여전히 회계법인이 입증책임을 집니다.
이번 외감법 개정안을 통해 입증책임이 바뀐 것은 은행, 종금사, 상호저축은행 등이 투자를 했는데 분식회계 등으로 손해를 본 경우 회계법인을 고소하는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여러가지 가능한 경우 중 극히 일부인 셈이지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회계사들은 회계감사가 단순한 적정의견 도장 찍어주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죽어라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몸 망가져가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환경의 기본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죠.
Commented by 포립 at 2008/02/29 17:12
대단한 글이네요... 제 지식이 짧아 다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만은...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기자들.. 요즘들어 전문성이 부족한 기사가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네요-.-;; 그건 그렇고 홍기맨님은 회계사셨군요! 멋지십니다..
Commented by 김백기 at 2008/03/01 09:09
싸이월드에 있는 '강서고 카페'에서 반가운 이름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네. 혹시 기억하려나 모르겠지만... '독어반'에서 같이 생활했었지. 어제 우연히 메신저에서 만난 장환이도 시카고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같은 곳에 있나 보군.

그나저나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5년이 넘었네. 다들 멋진 30대를 보내는 것 같아 좋다. 고등학교때 비슷한 어감의 이름인 '홍기'를 알게돼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회계사로 일하는 모양이구나.

홍기의 지난 흔적을 보며 그냥 나갈까 하다가 내가 하고 있는 일과도 관계있는 글이 있어 몇 자 남기려고 해. 난 만화같은 20대를 보내다 결국 글 팔아 밥먹는 직업을 갖게 됐어. 문화일보 사회부 법조팀 소속이야. 때문에 '외감법 개정안'이라는게 낯설지 않고, 최근 몇년간 수없이 쏟아져온 부실회계법인 관련 판결문도 생각이 나네.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놓기는 그렇고, 아무튼 나도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관찰자 또는 전달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줘서 고마워. 늘 전문가 집단과 함께 하지만 결코 내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기에 정확한 의미전달을 못한다는 고민으로 살고 있거든.

공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거든, 내 든든한 친구이자 '취재원'이 돼주면 고맙겠다. 시카고는 겨울이 유난히 혹독하다던데 건강 조심하고 자주 연락했으면 좋겠다.

내 메신저는 baekkikim@hotmail.com이고 이메일은 keykey7@gmail.com / bkikim@munhwa.com이야.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3/01 13:28
포립님// 감사합니다.
사실 이 포스트 내용은 제가 먹고사는 분야이니만큼 "지식"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요.
저도 포립님 포스트 중 반도 이해 못하는 걸요. -_-;;
포립님 이글루에서 "그쪽 세상"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워낙 이거저거 관심이 많은 지라... ^^;;)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3/01 13:34
백기// 우와! 진짜 오랜만이다!
찾아줘서 고마워~
사실 나도 네 생각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찾아주는 수고를 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얼마전에 장환이도 여기 시카고에서 직접 만나서 15년간의 회포를 풀었었는데 이렇듯 너하고도 인연이 이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곧 한국 들어가니 꼭 만나서 그간 살아온 얘기 좀 하세, 친구.
Commented by 아네스라 at 2008/03/10 00:18
정말,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정말로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차마 이 글을 퍼다가 기자한테 메일로 쏴주고 싶은 심정이군요.
그럼 평안한 밤 보내십시오.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3/10 01:28
아네스라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Mr. Ko at 2008/06/04 02:11
외감법 제6조(감사인의 권한)
① 감사인은 언제든지 회사 및 당해 회사의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소유하고 있는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관계에 있는 회사(이하 "관계회사"라 한다)와 계열회사의 회계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열람 또는 등사하거나 회사에 관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 직무의 수행을 위하여 특히 필요한 때에는 업무와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다.



라고 명문화 되어 있음에도, 갑/을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게 더 큰 원인이 아닐까...싶지않나 하는...심통이...불쑥;;..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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