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 (Agflation)

 오늘 손석희 교수가 방송에서 말실수를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단어가 "애그플레이션"이다. 농업 (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 (inflation)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손석희 교수는 "애그"를 계란 (egg)으로 오인하여 이야기했던 것이다. 손 교수의 실수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제야 지식이 부족한 것이 드러났다'든지, "그런 지식 수준으로 잘도 교수를 한다"든지 하는 헛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들이 어쩌다 한번 주워들은 단어를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모른다고 신나서 까대는 걸 보니 웃음만이 나온다.

 애그플레이션은 작년에 'The Econmist'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이다. 세상에 나온지 아직 1년이 채 안된 단어이다 보니 모를 수도 있는 단어이다. 게다가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단어도 아니고 언론에서 만들어낸 단어인데 이를 모른다고 지식수준이 의심된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손석희 교수가 "사용"한 eggflation도 어떻게 보면 잘못된 말이 아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농산물 가격 변동률이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 소비자 물가 지수 등이 상승, 즉 전체적인 물가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농산물을 대표하는 품목으로 계란 (egg)을 들어 eggflation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잘못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어차피 외국 언론이 만들어낸 말, 동급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언론이 좀 다르게 창조해내도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누군가를 응원할 때 쓰는 "화이팅"이란 말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지만 우리는 널리 잘 쓰고 있지 않은가. "화이팅"이란 말을 쓴다고 무식하네, 지식수준이 떨어지네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 애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두 단어 중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는 그 진정한 정의에 대해서 경제학계에서든, 언어학계에서든 논란이 있다. 물가의 상승은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첫번째는 통화량의 감소로 인한 통화 단위당 구매력의 하락이며 다른 원인은 실물재화 공급의 감소 또는 실물재화 수요의 증가로 인한 초과수요이다. 본래 경제학에서 최초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에는 그 의미가 '통화량의 급감으로 인한 통화 구매력의 급격한 하락'으로서 위의 두가지 원인 중 첫번째 원인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그 의미가 확대되어 '물가수준의 상승'이라는 의미로 통상적으로 쓰임으로써 어느 원인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결과로서 나타나는 물가의 상승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바른 정의냐는 문제는 아직도 정답이 없다. 그러니 아직 그 의미도 확실하지 않은 단어를 토대로 만들어진 신조어를 잘못 해석했다 하여 비판을 하는 것은 다소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작년부터 전세계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농산물 수확 감소, 바이오연료 개발로 인한 농산물에 대한 수요 증가, 농촌인구 감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의 다양한 원인들이 있는데 앞으로 10년 이상은 애그플레이션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는 것은 농산물이란 것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가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으면서 물가 수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애그플레이션 하에서는 경제정책의 운용 면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유류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신용경색의 확산 등과 맞물리게 되면 실물경제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은 저소득층이며, 특히 우리나라는 농산물 소비가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 소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적인 농산물 가격 상승의 장기화로 각 국가들이 농산물을 자원무기화할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農者天下之大本也"이라고도 하고, "力耕富國關吾輩"이라고도 하는데 이미 실체화되고 있는 위기에 면하여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농업자원 확충과 농업생산성 향상이 아마도 가장 시급한 문제일텐데 이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논의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은 농촌에 국한된 문제라는 의식이 지배적인데 일단 이러한 의식을 바꾸는 것만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 자신도 그동안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문제인데 이번 기회를 계기로 좀 더 깊이있게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by 홍기맨 | 2008/02/21 16:24 | About 'A'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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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세렌디피티 at 2008/02/22 13:54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2/23 05:07
세렌디피티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포립 at 2008/02/24 01:42
탄력성...흐~ 탄력성이 높으면 구매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낮으면 둔감하게 반응하나요?
예전에 다른 분야이지만 얕게 공부한 기억들이 납니다 ㅋ
사실 농산품이란게...뭔가 IT분야처럼 기사화될 핵심 이슈가 부족해서인지..
관심이 부족한 거 같네요. 저도 야채값이 금값될 때 빼곤 관심이 없는 듯 ㅋ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2/24 04:25
포립님// 탄력성에 대한 포립님의 설명은 거의 근접했습니다.
탄력성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제가 포스트에서 언급한 가격탄력성은 정확히 말씀드리면 가격이 변동할 때 구매수요가 변동하는 정도이지요.
농촌에 대한 관심은 "전원일기"가 쇠퇴하면서 사라졌다는... ㅎㅎㅎ
Commented by 포립 at 2008/02/24 16:15
전원일기..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도 기억나는군요 하하
Commented by 홍기맨 at 2008/02/24 22:45
포립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초창기에 몸빼바지의 고현정이 압권이었죠.
그나저나 "전원일기"가 종방된 이유를 최근에 알았답니다.
둘째 아들이 140억원대 부자가 되면서 집안 전체가 농촌 생활 청산하고 도시로 갔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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