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09일
Tracy 양
CBOE와 CCORP에 새로운 시니어 매니저로 "부임"하신 Tracy 양을 처음으로 직접 만났다. 이분과 같이 일하게 될 것은 그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직접 뵙기가 힘들었는데, 오늘 CCORP에서 회의가 있는 관계로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된 것... 그전에 Mike와 Alex 둘 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해주지 않고, 계속 "You'll love her!"만 외쳐대며 궁금증을 가중시켜 왔기에,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꼭 보고 싶었었다.
그런데 Tracy 양의 첫인상은 예상했던 바와 너무 딴 판이었다. 일단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줌마스러웠고, 매우 깐깐하고 엄격한 표정의 전형적인 미국 중서부 백인여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클라이언트와의 회의 전 우리들만의 자체 회의에서 보고하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다른 일로 정신 없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였다.
'앞으로 피곤하겠군...'
그런데 이런 첫인상이 불과 2시간 정도만에 무너져 내려갔다. 일단 CCORP으로 향하는 길거리에서 보스턴에서 겪었던 황당한 택시기사에 관한 경험담을 풀어내시면서 줄기차게 내뱉으시는 욕설들에 놀랐고, 클라이언트 회사의 법률이사에 CFO까지 컨퍼런스 콜로 모신 사뭇 진지한 분위기의 회의석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의 발언들을 서슴없이 해대시는 모습에 살짝 감동까지 받았던 것이다.
일단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 중에 끊임없이 옆길로 새나가는 잡담성 발언을 날리시더라...
"어제 휴가 끝나고 오늘 첫 출근인데 아직도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어요. 휴가 어디로 다녀오셨어요?"
"10년 전에 이 회사에 근무했던 아무개를 아는데 기억하세요?"
"어제 우리 7살 아들 앞니가 두개나 동시에 빠졌어요. 배게 밑에 넣어두라고 했는데 그만 오늘 아침에 돈으로 바꿔놓는 걸 깜빡했지 머에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메일에 재밌는 동영상을 받았는데 그거 보셨어요?"
급기야 오늘의 회의는 다음과 같은 즐거운 엔딩으로까지 치닫았으니...
매니저인 Alex가 회의 결과를 대충 정리하던 중이었다.
"...결국 존속주주들의 주당 평가액인 $112과 소수주주에 대한 주당 보상액 $146이 가장 문제인 듯 합니다. 또한 스톡옵션에 대한 보상액이 비용처리 되어야 할지 아니면 자본거래로 처리되어야 할지도 중요한 검토사항이겠습니다. 이에 대해 저희 내부전문가에게 자문하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때 Tracy 양이 클라이언트에게 하시는 발언...
"에구, 또 죽겠네요. 할 게 많아요, 많아... 이거 언제 다해? 좀 간단하게 하시지, 왜 이렇게 어렵게 하셨어요? 6년 만에 회계감사 일 하려니 도대체가 적응이 안 되네요. 또 다른 문제는 없는 거죠?"
원래 우리 같은 소위 "전문가"는 클라이언트 앞에서 잘 몰라도 아는 척, 어려워도 쉬운 척, 클라이언트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척, 그리고 경력이 많은 척 등 각종 허위포장을 해야 하는 법... 그런데 문제가 복잡하다느니, 할 일이 많다느니, 게다가 오랫동안 휴직했었다는 사실까지 여과없이 그대로 말해버리니 순간 모두들 당황하고 침묵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보았다. 회의에 참석한 클라이언트들의 입가에 재미있다는 미소. 그리고 전화기 유선 상 들려오는 클라이언트 CFO의 희미한 웃음소리. 당차고 털털한 Tracy 양의 모습에 클라이언트들이 기본적으로 즐거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녀의 서슴없는 발언들은 끊이지 않았다. 헤어지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오늘 클라이언트와의 회의는 참석하기가 귀찮고 싫었었는데 Tracy 양 덕분에 꽤 유쾌한 자리가 됐던 것 같다.
이번 busy season은 왠지 재미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 by | 2008/01/09 09:29 | About 'A' | 트랙백(1)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미국 어학교육의 목표
Tracy 양 좀 전 회의 중 Tracy 양께서 요즘 하고 계시는 고민에 대해 얘기하셨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데 선택할 수 있는 외국어 수업으로 스페인어와 중국어가 있어. 어떤 걸 들으라고 할 지 고민이야. 본인도 갈등 중인 거 같고..." 내가 놀라서 물어봤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요즘 중국어도 가르쳐요?" "그럼! 중요하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에요?......more